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한국인의 정 (문단 편집) == 전근대성 == 사실 '정'이란 것은 한국 뿐 아니라 '''전 근대 시대 지구상의 대부분의 농업국가에 존재했던 개념'''이다. 다만 조선의 경우는 타국들에 비해 이 것이 강한 편이었다. 전제군주제가 오랫동안 성립되어 오면서, 중앙정부는 지방세력이 상업활동을 통해 부를 불리는 것을 경계하여, 시장경제를 억압하였고 대부분의 무역은 국가주도로 행하면서 완벽히 농본국가화 되어 국가의 백성들이 일정한 농업생산물만 바라보게 되었다. 농업의 발달과 주변국(일본,중국)에 비해 비교적 상당히 적은 세율을 유지하고 있던 조선의 백성들의 경제력은 근대 공산주의와 비슷한 하향평준화를 겪게 되었으며(잉여생산물을 지방 사족들이 몰수함), 춘궁기를 제외하면 최소한 굶어죽을 염려는 없는 조선인들은 모두가 동일한 수준의 경제력을 유지하면서 거의 '스머프 마을' 수준의 평등경제 체제를 유지해 왔다. 또한 조선인들은 공동체 문화에 기인한 결집 능력이 강해, 지주가 부당한 착취를 시도하면 무력시위등 여러 방법으로 대항해 근대 이전인 17세기에 소작농의 권리강화를 뒷받침 하는 '도지권'을 획득했다. 자연스럽게 공동농작 문화가 발달하였으며,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는 강력한 촌락, 마을단위의 집단의식은 공동체 문화와 평준문화의 발달을 가져왔다. 이는 6.25전쟁 기간 중에 세계 최악의 민간인 학살률을 부추긴 원인이 되기도 한다. 한쪽 촌락 사람이 빨갱이나 반동으로 몰려 죽으면, 두 촌락 사이에서 대량학살극이 일어나는 식의 사건이 전쟁기간 내내 벌어지곤 했으니... 외지인이 접근하면 이들을 마을 노동력 시스템에 끌어들이기 위한 '구애시도'가 이루어졌으며, 이는 유교적인 예절과 맞물려 '인심좋은 한국인',즉 '정이 많은 한국인'을 만들었다. 이 모두가 철두철미한 농업국가였던 조선의 전근대 농업 시스템의 부산물이라는 것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